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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인들이 휴식을 취하러 오는 관광 도시 누사에 온 지 5일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 밖에서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어제 누사의 날씨는 무척이나 변덕스러웠다. 아침 7시 짝꿍과 나는 러닝을 하러 나가려고 했다. 남동생 가족들이 함께 나셨다. 우리는 러닝에서 산책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리조트 문을 나서 바로 길을 건너면 강과 맞닿은 공원들이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바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네가 있다. 이제 돌이 막 지난 둘째가 그네를 타고 싶다며 그네를 향해 손짓을 한다. 아이가 바라는 바를 놓치지 않고 남동생은 바로 그네에 둘재 조카를 앉혔다. 아직 작은 몸이라 버클을 채워도 몸이 쏙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주 살살 그네를 밀어주었더니, 조카는 그네를 타는 내내 생글생글 웃으며 기분이 좋다는 티를 팍팍 냈다.

    옆의 그네에 올케가 앉고 첫째 조카를 무릎에 앉혔다. 잠시 타고는 첫째 조카는 금세 그네에서 내려가 버렸다. 이번 여행에서는 남동생 부부가 조카들을 키우며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았다. 밥을 먹어야 하는 순간, 어른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밥 먹을 때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서 먹는 것,
    어딘 가에 부딪치거나 다칠 수 있는 상황,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

    이런 상황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이들이 표현하는 소리나 표정 등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것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 우리 부모님의 모습은 어땠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 가족 통화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네 아빠가 장애인이라, 괜히 손가락질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니들한테 더 엄하게 대했지.”

    정말 그랬다.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이 대체로 그랬겠지만, 특히 우리 엄마는 세 남매를 엄하게 키웠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이나 욕구보다는 엄마가 생각하고 믿는 바를 요구하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린 시절 엄마가 우리에게 대했던 그런 모습이 손주인 조카들을 향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가끔 ‘좀 심하다’ 싶을 때는 남동생이 제지하고 엄마를 멈추게 했다. 조카들을 보며 ’나도 어린 시절 저런 욕구가 있었겠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지금을 바라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만큼 표현하고 있을까?‘

    조카들처럼 말이나 행동 또는 표정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글로써 표현하는 게 가장 편안하다. 혼자 주절주절 끄적거리다 보면 내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곤 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 가까이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짝꿍이 좀 답답해하는 면도 있다. 도대체 속에 있는 말을 잘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짝꿍은 저녁때마다 강가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가자고 했다. 그리고 공원에서 많은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누사에 도착한 첫째 날,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에 들어와 맥주를 가지고 다시 나가려고 할 때 동생이 우리에게 말했다.

    “언니, 외국은 공공장소에서 맥주 마시면 벌금 낼 수도 있다는 사실 아니?”

    하지만 이미 우리는 산책하면서 수많은 호주 사람들이 공원에서 맥주와 와인 그리고 음식들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였다. 이에 짝꿍은 한마디를 톡 쏘아붙였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

    짝꿍의 이 한마디를 들은 여동생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좀 상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람들 다 술 마시고 있던데?“

    그렇게 맥주 두 캔 씩을 들고 공원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둘 사이에 진지하고 진중한 대화가 이어졌다. 여동생의 말에 대한 짝꿍의 반응에 내가 당황했으며, 그런 말은 그냥 앞으로 내가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짝꿍이 그렇게 얘기한 이유도 이해는 됐다.

    ”여동생이나 가족들이 당신(나)을 너무 무시할 때가 있어. 마치 자기가 다 아는 냥 단정 지어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물론 우리 집에서 제일 잘난 게 여동생이기 때문에 우리 집 대장도 여동생이다. 또한 대체로 맞는 말을 하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이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런 과정에서 가족들끼리는 이해하고 때론 기분이 상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어찌 됐든 한 다리 먼 올케나 형부인 내 짝꿍이 얘기하고 받아들일 때는 기분이 나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대지가 하는 말 다 맞아. 하지만 여동생의 그런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거잖아?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가 바뀔 수밖에. 서로 기분 나쁘지 않은 상황이 되려면 받아들이는 우리가 변할 수밖에 없어. “

    사실 이번 호주 여행을 오기 얼마 전 나는 ’가족구성원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마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사실은 인정욕구 하나 때문에 가족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도 내 마음이 긁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비워버리자 모든 것들이 꽤 편안해졌다. 그래서 여동생이 무슨 말을 하든, 엄마나 남동생이 뭐라고 하던지 간에 타격이 없었다.

    ’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짝꿍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나는 여동생이 하는 말이 내겐 1의 타격도 없어. 물론 예전에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클 때는 그런 말 하나에도 상처받고, 기분 나쁘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당신도 그런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행히 짝꿍도 이런 내 마음을 잘 헤아리고 이해해 주었다. 오랜 시간의 토론과 대화 끝에 우리는 서로가 가진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누사에서의 여행은 매우 평화로웠다.

    어제 오후에는 리조트에 있는 수영장에 조카들과 함께 갔다. 첫째 조카는 물이 무서워서 튜브를 끼고 있으면서도 본인의 발이 닿는 곳에만 있으려고 했다. 엄마 아빠 껌딱지인 조카였지만 수영장에서만큼은 엄마가 수영장 깊은 곳에 가 있어도 다가가질 못했다.

    화장실에 갔다 다시 수영장으로 달라오는 조카를 향해 말했다.

    “수영장 깊이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엄청 신나게 달려오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엄마나 가족들이 ’ 나를 단정 지으며 하는 말‘을 싫어하면서, 그런 말을 조카를 향해 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아, 이런 말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수영장 중간에 있는 작은 온천수에 들어온 조카. 조카는 작은 온천에서 몇 번의 시도 끝에 본인 발이 닿지 않는 물에서도 튜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발차기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며 연습을 하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갑자기 온천에서 나와 크고 싶은 수영장을 향해 달려갔다. 조카가 가니 아빠인 남동생도 따라갔다. 이번에는 얕은 수영장 입구에서 깊이가 갚은 곳까지 들어간 아빠를 따라 들어가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한 걸음 성장한 조카를 향해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쳐 주었다.

    그렇게 여행하는 며칠 사이에도 한 걸음씩, 한 뼘씩 자라고 성장하는 조카를 보며 나는 하루에 얼마만큼 성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에 완성을 이루려는 욕심을 내다가 제 풀에 꺾여 금방 포기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매일 1%씩 성장하고, 그것을 놓치지 말 것, 그리고 매일 1%를 해낸 스스로에게 조카에게 그랬듯이 큰 박수를 쳐 주고 칭찬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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