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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후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못 본 둘째 조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이었다. 태어난 후 100일만에, 그리고 두 돌쯤이었던 작년에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첫째 조카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잠시나마 우리들(할머니, 고무들, 고무부)이 아이들을 보는 동안 조카의 부모인 남동생 내외가 육아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작년 한국여행에서 첫째 조카가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이랑 재미있게 잘 놀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호주에 도착해 조카들과 만난 첫 날, 계획한대로 쉽게 되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둘째 조카는 엄마 아빠 이외의 사람에게는 전혀 안기질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안으려고 하면 무조건 울었다. 한국에서는 할머니를 비롯해 고모와 고모부에께까지 잘 안 겼던 첫재 조카까지 동생이 생겨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안으려고 하면 동생과 같이 우는 시늉을 했다.
한 마디로 엄마 아빠 껌딱지였던 조카들이라서 엄마 아빠의 육아 해방에 대한 꿈은 물거품이 되는 듯 보였다. 우리가 도착할 때, 두 조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없는 시간을보냈다. 그 동안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도착한 할머니와 작은 고모는 아이들을 봤는데, 30분 이상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공항에 우리를 데리러 오고가는 3시간 남짓의 시간, 우리가 뒷 좌석에서 뻗어 잠든 동안 앞 좌석에 있던 남동생 내외는 재잘재잘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이번 가족 여행을 통해서 나는 우리 가족을 그리고 나 자신을 한 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 가족들의 말말말
사람 사이의 말은 무엇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말은 가슴에 비수를 꽂아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로 인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들의 말습관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 나의 입장을 강요하는 말
‘ㅇㅇ 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다 큰 어른이 되어 아이까지 있지만 여전히 우리집 막내인 남동생. 특히 남동생에게 쏟아지는 말들 중 많은 부분이 바로 ‘이거 해, 저거 해’라는 식의 명령조의 말들이었다. 사실 나 역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많이 했다. 밥을 먹을 때, 아이들을 케어할 때, 거의 대부분의 일상에서 남동생을 향해 쏟아지는 말들이 끊이질 않았다. 엄마와 누나 둘까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짝꿍은 내게 말했다.
“그냥. 각자 알아서 하게 놔둬.”
강요하는 말은 오지랖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해 보라’고 권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상대방에게 잘 가서 닿을 때는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다. 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거나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때 내 말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 정도가 될 뿐이다. 잔소리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강요로 느껴지고 상대에 대해 싫어하고 증오하는 마음 등으로 번져 가기도 한다.
비단 남동생에 대한 말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은 서로에 대해 이런 말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호주인들의 휴양지인 누사에서 맞이한 첫날 저녁. 나와 짝꿍은 숙소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월요일이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안 데이’로 호주의 국경일이었다. 연휴를 맞이해 누사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강가를 둘러싼 공원에 하나 둘 앉아 모여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피자 등 집에서 싸온 다양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각자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 탐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집에 있던 맥주를 꺼내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1층 주방 식탁에 남동생과 둘째 조카 그리고 엄마와 여동생이 둘러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곳에서 남겨 온 치킨을 주고, 맥주를 챙겼다. 이때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야, 퍼블릭 플레이스(공공장소)에서 술 마시면 벌금 있는 거 아니? 미국은 그런데 여기도 그럴 수 있으니 조심해.”
이 말을 들은 내 짝꿍은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
이 말에 여동생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듯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동생이 한 마디를 더 거들었다.
“혹시 누가 뭐라고 하거나, 경찰서 잡혀 가게 되면 전화해. 달려갈게.”
그래서 내가 얘기했다.
“사람들 다 공원 벤치에서 맥주랑 와인 마시던데? 그래 혹시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할게.“
그렇게 우리는 각자 맥주 두캔을 들고 공원 강가 벤치로 향했다. 잔잔한 강이 바로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여행 첫 날부터 짝꿍과 가족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남은 여행 기간은 서로 불편하게 있다가 갈 것이 눈에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고 얘기하는데 약간 짜증이 섞인 말투로 들렸어. 왜 그렇게 말한 것 같아?”
내 말에 짝꿍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잠시 그때의 상황을 돌이켜 보며 생각을 하고 나서 내게 말했다.
“가족들이 당신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랬어.”
짝꿍의 ’무시한다‘는 말은 본인이 보기에 가족들이 나에게 너무나 쉽게 ’무언가를 당연하게 요구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필터없이 내뱉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이런 상황이 늘 있어왔고, 익숙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여러 번 짝꿍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내가 너무 익숙해진 언어폭력‘에 노출되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이제는 ’안돼, 못해‘라고 얘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를 향해 하는 모든 말들에 대해 ‘그래’라고 하니 가감없이 얘기하는 수위가 점점 높아졌던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겠네. 그런데 나는 사실 내가 무시당한다고 느껴지진 않았어. 오히려 자기가 그런 말을 하고, 동생이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그 상황 자체가 불편했어. 알다시피 여동생의 말투나 행동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잖아? 그럼 그런 여동생의 말이나 행동에 대응하는 우리가 바뀌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앞으로 그런 상황일 때 하고 싶은 말을 찾아주면 좋겠어. 대신 내가 얘기할게.“
고맙게도 짝꿍은 내 말에 수긍해주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심지어는
”내일 처제한테 사과라도 할까?“
라고 얘기하길래 내가 말했다.
”아니,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말 걸어줘.“
이렇게 가족간의 소통 문제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까지 다양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때쯤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봤을 때 짝꿍은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얘기해 주었다.
## 상대방을 단정하는 말
우리 가족의 말습관 중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단정하는 말‘이 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저런 사람이야.‘
그런데 이런 말을 나도 모르게 조카들을 향해 툭툭 던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숙소 수영장에서 조카들과 놀고 있었다. 전날은 바닷가에 가서 바다 수영을 했는데, 첫째 조카는 바다의 파도가 무서운지 발도 못 담그고 모래놀이만 열심히 하다가 왔다. 엄마와 고모들 그리고 고모부까지 모두 입을 모아 얘기했다.
”물이 무서워서 그런거야 수영장 같은데서 물이랑 점점 친하게 해준 뒤에 바다에 데려가자.“
우리의 말에 남동생은 수긍했고, 다음 날 조카를 데리고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우리도 조카가 놀고 있는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에는 수심이 160센티미터까지 깊어지는 두 개의 수영장과 하나의 온천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남동생 가족 모두가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 있었다. 한국에서 조카들 선물로 사간 수영 조끼 튜브를 가져왔다. 둘째 조카에게는 입히는 걸 성공해서 온천 물에 두둥실 혼자서도 잘 떠 있었다. 하지만 큰 조카는 입기를 거부했다. 결국 올케가 조카 튜브를 입고 큰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큰 수영장에서 멀리 깊은 곳까지 가는 엄마를 따라 가고 싶어 했지만, 큰 조카는 튜브를 끼고 있었지만, 본인 발이 닿는 수영장 가에서만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다시 온천으로 돌아온 우리.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큰 조카를 올케가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엄청 신나게 뛰어오는 조카를 향해 내가 말했다.
”물 깊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게, 엄청 신나게 뛰어오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내가 너무나도 듣기 싫어하는 ‘나를 단정짓는 말’을 내 조카를 향해 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아차 싶었다. 그리고 조카가 작고 얕은 온천수에서 본인의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도 튜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연습을 시켰다.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조카가 나에게, 그리고 나에게서 고모부에게 , 다시 고모부한테서 아빠에게 두둥실 떠 가는 놀이를 했다. 그렇게 여러번 하는 동안 조카는 자신이 튜브를 하고 있을 때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물 위에 떠 있으며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아빠 곁에 붙어서 발이 닿는 온천 가에만 있다가, 온천 중앙에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두둥실 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큰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조카를 따라 간 남동생. 남동생이 수영장 입구 얕은 곳에서 멀리 깊은 곳으로 수영을 해 갔다. 그러자 처음에 우리가 수영장에 왔을 때는 얕은 곳에만 있었던 조카가 아빠가 있는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조카의 모습에 우리 모드는 환호했고, 큰 박수를 쳐 주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물에 대한 공포, 두려움을 이겨내고 땅에 붙어있어야만 안심됐던 두 발을 뗀 뒤에 ‘이렇게도 안전할 수 있구나’를 몸소 깨닫고, 큰 수영장에서도 용감하게 놀수 있게 된 큰 조카가 너무나도 대견했다. 그리고 큰 조카를 향해 내뱉었던 내 말을 후회했다.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그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말’ 말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보니까, 라프는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야.“
이 한 마디가 그 당시 내가 글을 쓰지 않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뇌시켰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해.“
하지만 나는 ‘나를 함부로 단정짓는 사람’과 ‘나를 단정짓는 말’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낼 것이다. 조카가 해냈듯이 말이다.
이번 호주 가족여행은 매우 뜻깊었다. 조카의 성장만큼이나 고모인 나도 부쩍 성장한 느낌이 드는 여행이라고 할까? 이번 여행이 이렇게 의미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여행 가기 전 나의 깨달음 덕분이기도 하다. 여행 가기 전 나는 ’가족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발견했다. 물론 인정 욕구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인정, 주변 지인들로부터의 인정 등 다양했다. 하지만 ’가족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가족들이 내게 하는 말 한마디에 엄청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여행 가기 전에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내려 놓은 채 가족들과 여행을 하니 나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 한 명, 한 명 개개인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전희 일희일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여행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